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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현승

수제비_도종환 수제비 도종환 둔내장으로 멸치를 팔러 간 어머니는 오지 않았다. 미류나무잎들은 사정없이 흔들리고 얇은 냄비에선 곤두박질치며 물이 끓었다. 동생들은 들마루끝 까무룩 잠들고 1군 사령부 수송대 트럭들이 저녁 냇물 건져 차를 닦고 기름을 빼고 줄불 길게 밝히며 어머니 돌아오실 북쪽길 거슬러 달려가고 있었다. 경기도 어딘가로 떠난 아버지는 소식 끊기고 이름지을 수 없는 까마득함들을 뚝뚝 떼어 넣으며 수제비를 끓였다. 어둠이 하늘 끝자락 길게 끌어 허기처럼 몸을 덮으며 내려오고 있었다. 국물이 말갛게 우러나던 우리들의 기다림 함지박 가득 반짝이는 어둠을 이고 쓰러질 듯 문 들어설 어머니 마른 멸치 냄새가 부엌바닥 눅눅히 고이곤 하였다. 더보기
아버지의 마음_김현승 아버지의 마음 김현승 바쁜 사람들도 굳센 사람들도 바람과 같던 사람들도 집에 돌아오면 아버지가 된다. 어린 것들을 위하여 난로에 불을 피우고 그네에 작은 못을 박는 아버지가 된다. 저녁 바람에 문을 닫고 낙엽을 줍는 아버지가 된다. 세상이 시끄러우면 줄에 앉은 참새의 마음으로 아버지는 어린 것들의 앞날을 생각한다. 어린 것들은 아버지의 나라다. - 아버지의 동포다. 아버지의 눈에는 눈물이 보이지 않으나 아버지가 마시는 술에는 항상 보이지 않는 눈물이 절반이다. 아버지는 가장 외로운 사람이다. 아버지는 비록 영웅이 될 수도 있지만.. 폭탄을 만드는 사람도 감옥을 지키던 사람도 술가게의 문을 닫는 사람도 집에 돌아오면 아버지가 된다. 아버지의 때는 항상 씻김을 받는다. 어린 것들이 간직한 그 깨끗한 피로.. 더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