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학&문화/나의 시
땅굴
손아무
2017. 3. 12. 19:45
반 쯤. 내려간다, 땅속으로 조금 간다. 매일.
천적을 피해, 땅 굴로. 약간 어둡지만 안전한 곳으로
지열은 미약하지만 나를 덥히고 햇빛은 다정하다.
스무 살 쯤, 그 집은 공포였다. 발을 디뎠으나 땅은 아니었다.
철골과 시멘트로 포장한 공중 감옥에서, 불안하기만 한 하루의
합으로 생을 영위했다.
좁은 상자로 음식을 나르듯 날아다니던, 그 시절, 다행히
오래가지 않았다.
자본은 자신보다 높은 것을 싫어하는 듯, 조금씩 나를
끌어내렸다.
난 땅이 좋았고, 땅에 발을 디딘다는 것이 좋았고,
안전한 곳이 좋았고, 한 번쯤 나무의 뿌리와 사는 상상도
즐겼고, 내려감에 취해있었다.
좁지만 복잡하지 않고 어둡지만 무섭지 않은 안식처는
동경해 바라마지 않는 로망이다.
어둑해진 저녁, 조금 더 어두운 그 곳으로 내려간다.
비록 별은 없지만 적(敵)이 없는 곳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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