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문학&문화/나의 시

억새풀

그 친구는 항상 1분단 첫째 줄에 앉았다.

그가 맨 앞자리를 고집했던 건 수업에 대한 열정은 아니었다.

그냥 뒤로부터의 멀어짐, 도망에 대한 필요였다.

교탁에서 가까운, 그나마 보호가 가능한 자리였던 것이다.

언젠가 그 친구는 맨 앞자리의 유익함에 대해 설명을 해주었다.

뒤돌아 본 친구와 눈이 마주칠 일이 없다, 시선을 어디에 둬야하나 고민할 필요가 없다,

특히 1분단은 문에 가까워서 교실에서 사라지기에도 좋다,

2분단 가운데 맨 앞자리는 그런 면에서 맨 뒷자리만큼 못하다,고도 했다.

항상 바른 자세로 수업을 듣는 그 친구의 성적을 보고 교사들은 하나 같이 비슷한 말을 했다.

수업 태도는 좋은데 성적은 왜 그 모양이냐고,

하지만 그건 교사들이 그 친구를 잘 알지 못하다는 증거일 뿐이다.

그는 눈에 띄지 않기 위해 바른 자세를 유지할 뿐이다.

눈은 칠판을 향했지만 의식은 항상 뒤통수 너머에 머물렀다.

수업시간의 질문에 대답하는 것은 그 어떤 것보다 눈에 띄는 행동이므로

당연히 그 친구는 제대로 대답한 적이 없었다.

다만 다들 그러기에 선생님께서는 우리가 모두 공부를 못한다고 생각했을 뿐,

요즘 애들은, 이란 말을 붙여가며.

 

늘 한자리에 머무는 것은 의외로 존재감이 옅어져 가는 일인 듯하다.

그 친구가 처음 학교에 나오지 않았던 날,

담임교사의 짧은 설명을 듣지 않아도 우리는 그 이유를 다 안다고 생각했다.

며칠 반복됐던 결석에도 의아함은 느꼈지만 불편함이 없었기에 궁금함도 없었다.

책상이 언제 치워졌는지도 모르게 자연스레 사라졌고 그 친구에 대한 기억도 사라져갔다.

졸업 후, 길에서 아는 얼굴을 보았다.

하지만 내가 그 얼굴을 왜 알고 있는지 모른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난처한 내 표정에 관심 없이 먼저 손을 내민 그 친구는

다정스런 말투로 다른 친구의 이름을 부르고 있었다.

반응형

'문학&문화 > 나의 시' 카테고리의 다른 글

‘막탄(Mactan)’의 아이들  (0) 2017.11.29
남한산성  (0) 2017.10.30
해송海松의 갈증  (0) 2017.09.12
갑자기 달리게 된 여자  (2) 2017.09.04
자기소개서  (0) 2017.08.3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