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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학&문화/나의 시

갑자기 달리게 된 여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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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무 두 살, 겨울에 그녀는 한 번 본 남자와 결혼을 한다.

잠시 도망갔던 시간들은 연로하신 부모님의 까지 버틸 수는 없었다.

낯선 사내의 텁텁한 품 속, 샤워를 해도 지워지지 않는 땀 냄새와 더불어

공간이 분할되는 기묘한 상상과 함께 혼례를 마쳤다.

흐르던 강이 갑자기 바다를 만나던 순간, 그 고요히 흘러왔던 긴 여정의

무의미함에 휘말려, 가지고 있던 모든 토사를 놓아버리듯

결혼은 그렇게 그녀를 살아가게 만들었다.

항상 흔들리던 다리는 굳건히 멈추었고, 갑작스런

홀어머니의 죽음에도 슬픔은 오래 지속되지 않았다.

그녀는 항상 다리를 땅에 박아 넣기 위해 크게 굴리며,

세상사람 다 들으란 듯이 공기를 토해내고 다시 공기를 마시며

떠다니는 독기들을 모아 가슴에 담기 바빴다.

 

작은 성공들이 반복되어 큰 성취를 이루기에 세상은 너무 중독된 상태였다.

만연하던 희망과 누군가 던져둔 구멍은 궁합이 잘 맞았고, 주위를 무섭게 집어삼켰다.

옆집도 앞집도 오촌이며 칠촌이며 마을 전체가 구멍을 팠고 그 구멍에 빠져갔다.

하필 그 때 지아비는 옆 공터 구멍에 빠져버렸고, 두 아들은 잠시 떠나 있었다.

 

그녀는 이제 날 때 보다 약한 다리로 절뚝거리며 걷는다.

가슴 깊이 쌓아둔 독기가 옅은 날숨으로 조금씩 새어나오며

눈을 간지럽히고 피부에 구멍을 뚫곤 할 때마다 소량의 눈물이

강처럼 흐르며 감싸고 매만질 뿐, 누군가의 입김은 기대하기 힘들었다.

그녀는 회상한다. 지난 삼십 여년을 걸어왔던가, 뛰어왔던가.

빨리 뛰려 할수록 자주 넘어졌고 결국 걷기도 힘들게 된 지금,

걸어온 것인가, 뛰어온 것인가.’라는 질문이 가슴 깊숙이 맴도는

이유를 그녀는 생각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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