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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육/진로진학

[후기]수박먹고 대학간다 연수 후기

 

'수박먹고 대학간다' 연수 후기.

 

2017년 3월 18일 경희대 평화의 전당에서 2018학년도 대입에 대한 '수박' 연수가 있었다.

 

우리 학교 선생님들과 아침 8시 반에 만나서 출발했건만 그럼에도 결코 이르지 않았다.

 

무수히 많은 선생님들이 참여하여 진입로는 정신이 없었다.

 

교육계에서 이런 광경을 볼 것이라고 한 번도 상상해 본 적이 없었으니, 그야말로 충격이었다.

 

 

엄청난 인파에 드넓은 광장은 선생님들이 줄로 가득찼다. 거의 3~4kg은 나갈 듯 한 '수박' 책을 들고도

 

꿋꿋하게 버티는 모습들이 실로 감동이다. 어떤 선생님들은 동료 선생님들 책까지 챙기느라 5~6권의

 

책을 혼자 들고 가신다. 도대체 왜 교재를 택배로 부쳐주지 않는지는 모르지만 참으로 안타까움을 자아내는 풍경이었다.

 

 

경희대 평화의 전당은 처음 가봤다. 엄청 크더라. 대형 스크린이 세 개나 정면에 설치되었고, 무대 위의 사람은 얼굴을 알아 볼 수 없을 정도로 작게보였다. 그나마도 중층 끝에서 찍은 것인데 맨 꼭대기에 앉은 분은 어땠을까.

 

'국기에 대한 경례'로 첫 순서가 시작되었다. 무거운 교재에 좁은 의자와 앞뒤 간격 속에서도 대부분의 선생님들은 국기에 대해 경례를 하였다. 괜히 짠한 마음도 든다.

 

이제 연수에 대한 이야기를 하자.

 

강의를 하신 이대부고 선생님은 나름의 자신감과 분석력으로 무장하여 열심히 설명하셨다. 그 분이 그 많은 데이터를 수집하고 분석하는데 기울인 노력과 열정에 박수를 보낸다. 그리고 그 설명을 들으며 박수도 치시고 열심히 필기도 하시던 많은 선생님의 열정에 역시 박수를 보낸다. 정말 실제 고3보다 훨씬 고3같은 모습이라 할 수 있겠다.

강의하신 책의 저자는 대입과 관련된 일정을 정리하고 전형을 분류하고 유의할 점을 찾고, 대학별 변동사항 등을 체크하시고 최대한 객관적이고 정량적으로 134개의 대학을 표현하기 위해 최선을 다하신 것 같다. 분명 칭찬 받을만한 일이다. 그리고 학생들이 실제 원서를 넣을 때도 좋은 참고 자료가 될 것으로 믿어 의심치 않는다.

 

다만 개인적으로 연수를 들으며 여러 의문과 질문에 휩싸였다. 고3 담임이 처음이라 그런 것도 있겠지만 사실 꽤 오래 전부터 생각해오던 문제이기도 하다. 다만 고3을 맡고 있지 않았기에 그 질문을 조금 묵혀뒀던 것 같다.

 

첫째, 대입을 바라보는 사회의 모습에서 학문을 하는 가장 기본적 이유가 보이지 않는다.  

 

우리는 왜 공부를 하는가. 많은 대선 주자들과 국회의원들, 지자체장들도 선거판에 교육 정책을 들고 나온다. 몇 년 전부터 지속적으로 주장하는 것은 학생의 적성에 맞는, 적성을 살린-전혀 획일적이지 않은- 교육을 해야 한다는 것이다. 개별화, 특성화, 그리고 그 비슷한 의미로 쓰여지는 많은 얘기들은 결국 비슷한 것을 주장한다. 그리고 그렇게 지금까지 하지 못한 이유는 대부분 입시제도를 손에 꼽는다. 그 입시 제도에 발맞춰서 교육하는 학교 현장에 대한 비판은 덩달아 따라 붙는 덤이다. 

몇몇 극단적 주장들을 배제하더라도 수시모집의 확대는 이러한 비판의식에서 비롯된 것은 확실하다. 학생의 전인적 발달을 지켜보고 과정적 평가를 수행하고 과도한 학업 부담을 줄이고 사교육을 감소시키며 공교육을 정상화하자는 취지에서 수시모집을 확대한다고 설명한다. 그런데 그게 사실인가?

지금 선생님들이 듣는 저 연수도 크게 보면 '사교육'이 아닌가? 많은 자본과 노력을 들여 전국에서 무려 4400여명이 참여한 연수의 주요 주제는 '어떤 전형에 어떻게 대비하고 어떤 아이들을 보내고 어떤 전략을 짤 것인가'이다. 결국 간단히 어떻게 좋은 대학에 갈 것인가?에 대한 답변이 아닌가. 

좋은 대학에 가지 못해도 공부할 이유는 충분하다고 생각한다. 그런데 사회가 학생들의 공부를 너무 필요성의 입장에서 바라보고 있는 것은 아닐까?

 

둘째, 수시모집의 확대는 정말 바람직한가?

 

지속적으로 수시모집이 확대되고 있다. 현재는 수시와 정시의 비율이 거의 7 : 3 정도인 것 같다. 그래서 수시를 준비하는 학생과 정시를 준비하는 학생으로 나뉜다. 같은 학생인데 이원화 된다. 수시를 준비하는 학생은 수시에 맞게, 정시를 준비하는 학생은 정시에 맞게 준비해야 한다고 한다. 정말 그럴까?

수시와 정시는 그렇게 따로 준비해야 하는 걸까? 수시모집의 확대는 정말 학생들의 꿈을 실현시켜 주고 대학으로서는 잠재성 높은 학생을 선발할 수 있는 기회를 주는 것일까? 수능의 스트레스를 줄여주고 공부를 못하는 학생에게도 기회가 확대되는 것일까? 그런데 왜 상위권 대학에 진학하는 일반고, 지방 출신의 학생들은 줄어만 갈까? 지역인재 전형은 필요할까? 수시모집과 관련된 질문들이 머리 속에서 쏟아져 나온다. 많은 사람들이 공부를 못하는 학생들은 수시로 갈 수 밖에 없다고 말한다. 진짜 그래야만 하는 걸까? 수시는 그러라고 만들어 놓은 것일까? 그런데 왜 수능 최저컷이 존재하며, 국영수와 관련된 적성검사 전형이 있으며, 면접과 논술이 있는 전형의 경쟁률은 그리 높고 상위권 대학들이 좋아할까?

수시모집의 확대가 정말 학생들에게 좋은 영향을 주고 있을까?

답을 내리지는 않겠다. 다만 의구심이 드는 것은 사실이다.

 

셋째, 선발의 주체는 대학, 교육의 주체는 교사, 학습의 주체는 학생이여야 하지 않을까?

 

학생은 열심히 공부를 하고(꼭 교과 공부 또는 수능 공부를 의미하는 것은 아니다) 교사는 열심히 교육을 하고(물론 수업시간에 국한된 의미는 아니다) 대학은 자신들의 취지에 맞는 학생들을 선발하고 이후 고등교육을 시키는 것이 각자의 역할일 것이다. 너무나 당연한 이야기이다. 그런데 다들 시선이 어디로 향해 있는 것인지 모르겠다. 뜬구름 속에서 먹기 좋게 익은 눈송이를 잡으려고 날개도 없이 공중을 위태하게 날아다니는 느낌이다. 학문에 정진하여 깨달음을 얻어야 할 학생들이 자기 스펙 치장에 여념이 없고 학교는 그것을 장려하고, 대학은 조장한다. 교육부는 생색내고 정치인들이 부채질을 한다.

제대로 운영되지 않으며 겉치레만 요란한 자율동아리와 각 종 방과후 수업, 여러 사업들이 판 치는 교육계는 누구에게 잘 보이려고 하는 것일까? '현실적으로 갈 수 있는 대학'의 목록 작성과 '전략적으로 원서를 쓰기' 위해 고군분투 노력하는 교사의 존재 의미는 무엇인가? 마지막으로 도대체 대학은 어떤 이유로 같은 취지의 전형에도 서로 다른 기준을 제시하는가? '국영수'만 반영하던 '국영수사과'를 반영하던 같은 전형에서 다른 기준을 제시할 수 있다면 그 이유도 제시할 수 있어야 하지 않을까? 왜 그걸 학생들이, 그리고 학부모들이, 교사들까지 공부해야 하는가? 학생부 종합 전형의 취지로 봤을 때 수능 컷은 무슨 의미인가? 학생부 교과 전형에서 높은 최저컷은 좋은 학생들을 미리 확보하자는 의미가 아닌가?

'입시는 예술이다'라고 하신 분의 말씀도 일리는 있다. 근데 그 예술은 각자의 입장에서 역할 책임을 다한 후, 그 이 후에 의미가 있지 않을까?

 

넷째, 지금의 수능은 도대체 어떤 역할을 수행하는가?

 

마지막으로 수능에 대해 이야기 해보고 싶다. 어떤 이에게 수능은 꼭 필요하고, 어떤 이에게 수능은 계륵이고, 어떤 이에게 수능은 의미가 없다고 한다. 원래 수능이 그런 것인가? 평가의 기본 취지에 대해 한 번 진지한 고민이 필요하다고 본다. 역으로 오직 수능만 생각한다면 학교 내신 시험은 아무런 의미가 없는가? 그렇게 말씀하시는 분은 거의 없는 것 같다. 난 개인적으로 수능도 학교 내신 시험이 가지는 그 고유한 평가적 가치가 당연히 존재한다고 생각한다. 특성화고에서 바로 취직을 하는 경우 정말 아무런 의미가 없다고 생각할 지도 모르지만 그런 경우 조차도 나는 수능이 어느 정도 의미가 있다고 생각한다. 공교육의 기본적 목적은 취직을 잘 시키는 것도, 좋은 대학을 보내는 것도 아니다. 성인이 된 이후 스스로 지속적으로 학습할 수 있는 능력을 갖추게 하는 것, 구체적, 지엽적 지식의 축적이 아닌 학습 능력 자체의 향상이 가장 기본적인 공교육의 목적이라고 믿어 의심치 않는다. 그래서 국어가, 영어가, 수학을 왜 배워야 한다는 질문은 핵심을 벗어난 질문이라고 생각한다. 많은 위대한 이들이 그러한 교육 시스템 속에서 성장했고, 그들의 구체적 업적에 하등 도움이 되지 않아 필요없다고 말하는 많은 이들의 그 논리와 주장 들 역시 공교육의 힘으로 일궈낸 것이다. 그들이 공교육을 거치지 않았다면 그런 주장과 논리를 펼 수 조차 없었을 것이니 이는 당연하다. 그럼 수능은? 그런 공교육의 결과물을, 12년 간 노력해온 결실을 전국 단위로 점검하는 일이다. 마냥 학습부담 감소를 위해 내용을 축소하고 있는 현 교육과정의 변화에서 그것이 옳은 일인지 점검할 수 있는 유일한 수단이다. 국가의 인재 양성을 위해, 교육과정의 방향성을 잡기 위해, 교육의 현실태 점검을 위해, 그리고 학생 개인으로서도 민주적 소양을 갖췄음을 확인하기 위해 수능은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백년지대계'라는 거창한 표현의 교육계가 매년 바뀌고 흔들린다는 것은 정말 이상한 일이 아닐 수 없다. 학교가 잘 바뀌지 않는다고 비판하는 목소리가 교육계 내부에도 있다. 물론 학교는 잘 바뀌지 않는다. 교사들은 보수적이고 구체제를 선호하며 어찌보면 고리타분 할 수도 있다. 하지만 그렇기 때문에 정치적인, 선동적인 변화는 근본을 더더욱 바꾸지 못한다. 오직 겉보기만 그럴 듯 하게 변화시킬 뿐이다. 교육은 보수적인 성향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그 변화 또한 점진적으로 유도해야 하며 실현 가능성이 있어야 한다. 

약간 삼천포로 빠진 느낌이 있긴 하지만, 아무튼 수능은 그 본질적 가치로서 의미가 있다. 국가에서 많은 예산을 들여 개발한 문항이 아무 의미가 없도록 사회에서 분위기를 조장하는 것은 그 본질적 가치를 무너뜨리는 것이며 학생들에게도 그리 좋은 영향은 아닐 것이라 생각한다. 특히 교육에 있어 개인적 필요성이라는 당위를 현 시점에서 단언한다는 것만큼 위험한 것도 없을 것이다.

 

 

흔히 합격과 관련되어 위로의 말로 '운칠기삼'이라는 표현을 자주 쓰는 것 같다. 좋은 위로 일 수 있다. 이번에는 운이 없었으니 열심히 하면 다음엔 운이 있을거야, 라고 말하는 것 같다. 하지만 그것은 위로 이상이면 안 된다. 학생들의 진학 문제도 마찬가지다. 자신이 이루고자 하는 뜻이 꺾일 때에도 그 이유가 오직 자신의 내면으로 향했을 때만 보다 성장할 수 있을 것이다. 나는 학생들이 조금 더 공부해도 된다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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